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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만 뽑는다”
- 관리자
- 2020-09-02
LCK의 요람, 아카데미를 가다
T1 아카데미 박세호 코치 인터뷰
박세호 코치
프로게임단 T1은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내에서 가장 수준 높은 아카데미를 보유한 팀으로 꼽힌다.
올해 ‘칸나’ 김창동, ‘클로저’ 이주현 등이 1군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그 경쟁력을 여실히 입증했다.
T1 아카데미는 어떤 철학으로 유망주를 육성하고 있을까. 또 김창동과 이주현의 뒤를 이을 인재는 누구일까.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구의 T1 숙소를 방문해 아카데미의 두 탑라이너 ‘제우스’ 최우제(17)와 ‘버돌’ 노태윤(18), 정글러 ‘오너’ 문현준(19), 박세호 코치(26, 이상 한국식 나이 기준)를 만났다.
인터뷰 1부에선 선수 3인을 소개하는 내용을, 2부에선 박 코치의 육성 철학을 다룬다.
-오래된 LoL 팬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T1 아카데미 코치가 된 경위가 궁금하다.
“원래는 선수를 지망했다. 코치 제의가 와 진로를 바꿨다. 2015년 중국 OMG에서 코치 생활을 처음 시작했고, 팀이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해 재계약에 실패했다.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군대에서도 게임 공부를 많이 했다. 제대 후에는 1년 반 동안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다. 아스트릭과 나이트 울프란 팀에 있었다.
LoL 팀으로 너무 가고 싶어 이곳저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웬만한 팀엔 다 원서를 넣어봤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다 떨어졌다. 그러다가 2018년 12월경 다른 팀 관계자로부터 ‘3부 꼴찌 팀이라도 맡아보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면접 장소에 와보니 T1이더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종의 테스트였던 거 같다.”
-요즘 대부분의 팀이 아카데미를 갖췄다. T1 아카데미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저는 국내 팀과 스크림을 안 한다. 제가 지향하는 육성 방향은 LPL 쪽이다. 저는 코치 1년 차 때 OMG에서 ‘우지’ 지안 즈하오(은퇴)와 함께하면서 ‘공격적인 게 좋다’는 걸 배웠다. LCK는 그동안 눕는 플레이, 안정적이고 리스크 없는 플레이를 지향했기 때문에 롤드컵을 계속 놓쳤다고 생각한다.
저는 LPL 위주로 보고 가르친다. 공격성이 곧 경쟁력이고, 그게 결과로도 나왔다. 신인 중에 우리가 배출한 ‘칸나’ 김창동이나 ‘클로저’ 이주현처럼 공격적이면서 또 안정적으로 하는 선수 없지 않나. 제가 공격성을 키워놓으면 1군에서 안정성을 배우는 것이다.”
-본인이 육성한 선수들이 LCK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감회가 새로울 텐데.
“사실 LCK 보면서 울컥할 때가 많다. 창동이가 우승하고 울 때 저도 많이 울었다. 제가 그들의 부모님은 아니지만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동안 같이 겪은 세월도 있어서 후련하더라.
아카데미에 있다가 1군에 올라가면 전보다 훨씬 많은 주목과 사랑을 받지 않나. 이때 태도가 돌변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데 창동이, 주현이는 지금도 예전과 똑같다. 똑같이 동생들 챙기고, 먼저 1군에 올라갔다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종종 같이 밥 먹고 편의점도 간다. 대견스럽고 예쁘다.”
-본인의 육성철학에 관해 얘기해 달라.
“저는 실패할 배짱이 있는 선수를 키운다. 실패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 단점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그런데 장점은 잘 모른다. ‘오너’ 문현준도 자신이 공격적인 선수라는 걸 몰랐다.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게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또 해야 하는 일이다.
저는 선수를 제너럴리스트(다방면으로 능력이 뛰어난 선수)보다 하나를 특출하게 잘하는 스페셜리스트로 키워서 1군에 보내는 걸 목표로 한다. 창동이나 주현이도 신인이지만 공격적으로 잘하지 않나. 아마 처음 1군에 갔을 때 많이 혼났을 거다. 그렇지만 그게 그 선수들의 경쟁력이다. 선수의 미래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모집 공고를 올릴 땐 마스터 티어 이상을 기준으로 삼지만, 다이아몬드 1티어나 마스터 티어 초반대에서도 선수를 찾는다. 거기 있는 선수들은 본인의 점수가 낮은 것을 알기 때문에 간절하다.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해본다.
그런 선수들을 데려와서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본다. 최근에 ‘버돌’ 노태윤이 솔로 랭크 1등을 찍은 게 대견스럽다. 처음 팀에 왔을 때 다이아몬드 1티어였다. 개인적으로 챌린저 티어에 있는 선수들은 안 뽑는 편이다. 거기 있는 유망주들은 솔로 랭크에 최적화됐고, 점수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피드백을 할 땐 좋게 말해줄 수 있는데도 자존심을 건드려보기도 한다. 선수의 현 상황에 대해 말할 때 필터링 없이, 냉혹한 현실을 말해준다. 선수가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제게도 선수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다른 팀 코치들이 종종 왜 선수들이 T1 아카데미에 입단하면 솔로 랭크 점수가 급상승하는 건지 물어본다. 그럴 애들만 뽑아서 그런 거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들이다. 피드백 받다가 우는 선수들도 있다. 왜 우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못해서, 분해서, 팀원들에게 미안해서 울었다’고 한다. 우리 팀에 남 탓하는 선수는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창동이와 주현이다. 창동이가 아카데미 생활하는 동안 눈물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미 알려진 스토리대로 창동이에겐 여러 힘든 배경이 있었다. 카페에서 면담하면서 1군 콜업 사실을 전하니 자기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막 울더라. 그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애착이 가는 선수다.
주현이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예전에 김정균 전 감독이 ‘페이커’ 이상혁을 데려올 때 삼고초려 했다고 들었다. 주현이도 그렇게 데려왔다. 친분이 있는 ‘엘림’ 최엘림에게 설득을 도와달라고도 했고, 주현이 부모님이랑 작은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얘 진짜 천재다. 보내주시면 안 되겠냐’고. 주현이 부모님과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저한텐 아마추어 ‘클로저’한테 ‘고전파’가 보였다. 어렵게 데려왔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현재 아카데미 선수들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또는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제우스’ 최우제는 남들이 못 보는 한타 각을 본다. 콜이 아주 좋고, 불리한 상황을 뒤엎는 힘이 있다. 보통 게임을 지고 있으면 말수가 적어지는데 우제는 다른 애들을 이끌어간다. 단점은 아직 CS 수급 등의 기본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 또 본인은 팀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게 안 좋다고 생각해 피드백하고 있다.
태윤이와는 창과 방패 같은 관계다. 태윤이는 천재적인 노력파다. 바닥부터 올라왔는데 본인의 현 상태를 아주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 때로는 제가 말하는 게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믿어준다. 항상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느낌을 주는 건 ‘구마유시’ 이민형 이후로 태윤이가 처음이었다. 돈, 명예 같은 걸 갈망하는 게 아니다. 최근엔 솔로 랭크 1위 달성이 그 결과였다. 단점은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준이는 천재인데 바보다. 본인을 잘 세공하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데 스스로를 돌멩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본인을 스스로 갈고 닦으니까, 다이아몬드 원석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까 예쁜 보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클리드’ 김태민(젠지)이 아마추어 선수를 잘 칭찬하지 않는 거로 아는데 ‘오너는 이적료를 주고서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앞으로 더 빛날 선수다. 승부욕도 세고 갈증도 많다. 그런데 잘 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롤드컵에 나갈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 그래서 그 선수들과 함께 롤드컵에 나가보고 싶다. 그게 창동이든, 주현이든, 또 여기 있는 누구든. 그들과 드라마를 한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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